길에서 타인의 인생을 듣다

2014. 4. 20. 19:26 살아가는 이야기

시작은 짧은 눈 인사? 혹은 눈 마주침?에서 시작됐다.



어제...



지름길을 가로질러 집으로 가고 있었다.


한적한 산길을 따라 나 있는 길이기 때문에 가끔 운동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자동차 한두 대가 지나가는 게 고작이다.

해도 길어지고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그런지 바람도 살랑거리고 벌써 비 냄새가 나는 듯도 해서 풍경을 감상하면서 아주 천천히 집으로 가고 있었다.



반대편에서 70세 정도 돼 보이는 할머님 한 분이 지팡이에 의지해서 내려오고 계셨다.

 

그런 한적함에 사람을 만나면 경계심보다는 풍경을 혼자 차지하고 싶은 욕심에 짜증?이 먼저 밀려오는데, 바람이 좋아서 그랬는지 할머님과 눈이 마주치자 웃으면서 가벼운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할머님께서 넌지시 한 곳을 가리키시며 "저기에 작물을 심으몬 주인이 뭐라 할까 잉~"하신다.

건너다보니 길옆 안전철망 넘어 무화과와 감나무가 몇 그루 심어져 있는 비탈진 땅에 드문드문 잡초가 무성한 빈터가 보였다.

아마도 심심풀이로 빈 땅에 작물을 심어 놓고 소일거리로 삼고 싶으신 모양이다.

역시 그런 이유로 빈터가 아깝다고 하신다.

 

그래서, "누구 땅인지 알 수 없으니 며느님이나 따님에게 말해서 연락처 적은 '간판'하나 세워 놓으시는 건 어떠세요?" 했다.



내가 반응을 보이니 좋으셨던 모양이다.

며느리도 딸도 아들도 모두 멀리 떨어져 있고, 맞은편 아파트에 홀로 거주하고 계신단다.

 

그러면서 할머님이 당신의 인생사를 하나씩 풀어 놓기 시작하셨다.

자식이 다섯이나 되고 손주도 여섯이나 당신 손으로 직접 키웠으며 베트남 며느리 자랑까지 쭉 말씀하신다.

 

해가 넘어가고 있고 낮은 산이라고 해도 역시 산길이라 서둘러 가고 싶은 마음도 누르고 그렇게 할머님의 인생사를 들었다. ^^

 

결국, 당신 가슴에 묻어 두었던 어떤 비밀까지 말씀하시며...

"처음 보는 사람이라 편해서 그런가 아무에게도 말 못했던 걸 말하게 되네..." 하신다.

 

그렇게 장장 1시간 가까이 길에 서서 할머님의 인생사를 공유했다.



다시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 인생을 책으로 쓰면 몇 권이나 나올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제는 안정적인 노후를 보내고 계시는 할머님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의 노년은 어떤 모습일까? 라는 상상도 해 본다.

 

나의 노년도 할머님처럼 평온했으면 한다.

여전히 카메라와 함께였으면 한다.

사람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담담하게 영상에 담는 모습이었으면 한다.

그런 사람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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